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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하는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다면 어떨까?

  까멜레옹에서 작년에 나온 소설, <점퍼 1 -순간이동->를 처음 보면, 그 직후 국내에서도 개봉한 영화 <점퍼>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영화 <점퍼>의 원작이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이 '순간 이동'을 하는데다, 그 이름도 영화 속 주인공과 똑같거든요.)

  하지만, 이 작품은 영화 <점퍼>와는 관련이 없는 작품입니다. 단지 주인공 이름이 같고, 순간 이동을 한다는 것 뿐... 무엇보다도 전세계에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주인공 하나 뿐이라는 점에서도...


  소설 점퍼는, 순간 이동이라는, 한편으로 매우 드문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스타트렉]의 양자 전송 같은 능력을 갖춘 주인공 데이비드 라이스(데이비)의 1인칭 시점으로 그려지는 작품으로 ‘순간 이동 능력이 있다면 어떨까?’라는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펼쳐나가고 있지요.

  평범한 17세 소년 데이비. 그는 알콜 중독에 빠진 아버지에게 거의 매일 같이 학대당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아버지에게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순간, 그는 자신이 -스스로 가장 안전한 곳이라 생각하는- 도서관에 도착해 있는 것을 알게 되지요.
  자신이 혹시 정신을 잃었던 건 아닌가 생각하면서도, 언제 쫓아올지 모르는 아버지를 피해 도망치던 소년. 하지만, 친절하게 대해주는 줄 알았던 트럭 운전사에게 추행을 당할 뻔했을 때, 다시금 도서관에 도착한 자신을 발견하며 능력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 한번 가 보았던, 그리고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이동할 수 있는 기술. 바로 순간이동입니다.


  가족과 함께 했던 마지막 여행지. 뉴욕의 한곳을 떠올린 소년은 그곳으로 날아가 거리의 생활을 시작합니다. 아버지의 지갑에서 가져나온 돈은 강도를 당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사회보장번호도, 출생 증명도 없이 자신을 증명할 수 없었던 그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거리를 헤매게 되지요.

  전자제품 상점 안을 들어갈 수는 있지만, 물건을 훔쳐봐야 처리할 방법을 모르는 상황.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소년은 ‘돈 그 자체를 훔친다.’라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수를 써서 은행 금고실 안을 기억한 그는, 하루밤 사이에 백만장자가 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삶은 지극히 즐겁게 전개됩니다. 아파트를 빌려서 책만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이따금 여기저기 여행 다니기도 하고, 게다가 우연히 만난 여성과 사랑을 하게 되고, 집을 나간 어머니와 재회하기에 이르지요.

  하지만, 그러한 삶은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가정에 개입하면서 조금씩 틀어지게 됩니다. 경찰이었던 그자는 데이비를 수상쩍게 여기고 추적하고, 위장 신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탓에 여자친구인 밀리의 오해를 사 헤어진 그에게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죠. 비행기 납치범의 폭탄으로 처참하게 죽었다는 사실이... 게다가, 테러범을 찾고자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상황에서 그를 수상하게 생각한 국가 안보국(NSA)에서 쫓아다니기에 이르는데...


  한번 가 본 곳이라면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순간 이동 능력. 한편으로 그것은 무적이라 해도 좋을 겁니다. 총을 겨눈 강도 앞에서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경찰이건 CIA건 상대가 안 되지요. 이삿짐센터도 필요 없고, 무슨 물건이든 자유롭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능력...

  하지만, 그 어떤 능력도 ‘만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 작품은 가르쳐 줍니다. 여자 친구를 납치한 NSA를 상대로 요원들을 세계 각지로 여행 보내면서 복수를 하고, 테러범들을 잡아다 수영을 시키기도 하지만,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무언가로부터는 절대로 도망칠 수 없는 상황... ‘자기 자신으로부터 점프’할 수 없는 이상 그의 고뇌는 계속됩니다.

  이 작품은 사악한 테러범을 물리치는 ‘정의의 점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데이비는 ‘나는 은행에서 돈은 훔쳤지만, 도둑은 아니다.’라며 물건을 살 때는 꼬박 꼬박 돈을 지불합니다. 심지어는 아버지에게 훔쳤던 2200달러도 나중에 돌려주지요.
  하지만, ‘은행에서 돈을 훔친 것’은 분명히 범죄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은행 입장에선 아무 것도 아니야.’라며 변명하기도 하지만 항상 죄책감에 괴로워합니다.

  NSA에 여자 친구가 납치된 이후, “대통령을 콜롬비아로 여행시켜 볼까요?”라고 협박하지만, 그가 하는 것은 고작 자신을 감시하는 요원들을 세계 각지로 보내버리는 정도... 어머니를 죽인 -그래서 그렇게 쫓아다녔던- 테러범조차 자기 손으로 죽이지 못하는, 그런 평범한 소년이지요.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특수한 능력을 얻었지만 지극히 평범한 한 소년의 성장 일기라고 할 수 있겠군요. 처음 ‘점프’ 능력을 깨닫는 순간부터 아버지와의 -일종의- 화해를 거쳐 자신의 문제로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소년의 이야기가 매우 생생하게, 그리고 즐겁게 펼쳐집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넘쳐나는 위기 속에 책장이 절로 넘어가지만, 결코 부담이 되지는 않을 정도... 아이나 청소년, 물론 어른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일까요?

  게다가 이 작품은 SF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편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선 주인공 데이비가 ‘점프’ 능력을 얻게 된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 원리도...

  이야기 진행에 필요한 ‘점프의 한계’는 실험을 통해 확인하고, 점퍼의 제약도 여러 가지로 소개되지만(다시 말해, ‘점프 능력을 얻었을 때 과연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라는 내용을 다채롭게 펼쳐나가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왜?’ ‘어떻게?’라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 복잡한 설명에 부딪힐 필요가 없지요.

  독자로서 이렇게 편한 작품도 오랜만이라는 느낌입니다. 이 작품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려고 한 이유를 알 만하다(하지만, 이제야 만들어진 것은 이상하다)라고 할까요?

  물론, NSA나 테러범과 대결하긴 해도, 평범한 -그리고 근본적으로 선한- 청소년의 성장 일기에 불과한 이 작품은 헐리우드의 거창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여담 ) 영화 [점퍼]가 나온 것은, 아마도 이 작품의 후속작인 [Reflex]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리플렉스는 얼마 전 까멜레옹에서 <점퍼 3 -리플렉스->라는 이름으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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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에 나온 이 작품은 밀리와 결혼하고 NSA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점퍼 ‘데이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1992년에 만들어진 소설 [점퍼]에서 데이비는 -적어도 알려진 바로는- 유일한 ‘점퍼’였고, 다른 이들은 그 능력에 대해 알지 못해 일방적으로 당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Reflex]에서는 악당들이 점퍼의 능력과 한계를 알고 그를 잡아 가두기에 이릅니다. 바로 영화 [점퍼]처럼 말이지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영화 [점퍼](점퍼 2 : 그리핀 이야기)는 소설판 [점퍼]의 후속작 [Reflex]의 또 다른 뒷이야기라고 해도 좋겠군요.
  한편으로 영화판 [점퍼]의 프리퀼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악당 점퍼가 나오는 [Jumper: Jumpscars]라는 작품도 있으니, 앞으로 순간 이동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점퍼] 시리즈가 계속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