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월 12일. 오늘은 SF나 과학과 관련하여 그다지 많은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또는 국제적인 관계에서 매우 큰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일본의 오다 노부나가가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격파한 사건은 오랫동안 지속한 일본의 전국 시대를 종식시키는 첫 걸음이었으며, 결국 임진왜란을 거쳐 조선의 굴욕과 명나라의 패망 등을 가져오는 역사의 첫 갈림길이기도 했습니다.
  만일, 노부나가가 요시모토에게 패했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이마가와 요시모토 역시 기존과는 달리 쇼군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 면이 있었지만(실제로 쇼군이 임명한 관리를 무시하고 다이묘의 권리를 주장한 것은 요시모토가 처음이었습니다.) 노부나가처럼 전국 시대 종식을 가져오는 하극상 정신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18세기 초에 버지니아에서 채택한 버지니아 권리장전은 개인의 인권을 국가의 권위보다 위에 둔, "잘못된 정권에 반항하는 것은 정당하다"라고 당당하게 말한 최초의 선언문으로 미국의 독립 운동, 프랑스 혁명, 그리고 이후에 일어난 수많은 민중 항쟁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한편, 20세기 말엔 러시아가 소련이라는 껍질을 벗어던졌습니다. 결국 마찬가지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사실 그 차이는 매우 큽니다.
  소련 시대에 러시아와 타국의 관계는 주인과 하인(또는 정사원)이었다면, 러시아 시대는 사장과 아르바이트생(또는 비정규직)의 관계라 볼 수 있습니다. 러시아가 주변국을 지배하는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지만, 그만큼 러시아의 부담은 줄고 다른 나라의 부담은 늘어났습니다.(미국과 주변국(이를테면 멕시코나 남아메리카 여러 나라)과의 관계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사실상 멸망하던 소련이 러시아로 변신하면서 급격하게 회복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미국과 우주 경쟁을 진행하던 소련에서는 1967년 베로나 4호를 발사하여 역사상 최초로 지구 밖 다른 행성의 대기에 진입하여 탐사를 진행했습니다. 우주 개발로서는 엄청난 성과이지만 이 덕분에 SF 세계에서 금성 세계를 등장시키기 힘들어진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실제로 방문한 금성은 그때까지 상상했던 것에 비해 훨씬 혹독한, 지옥 같은 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경이 있는 만큼 극복하는 보람도 있는 법. 이후 많은 작가가 금성을 지구처럼 개발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합니다.

  6월 12일. 오늘의 SF.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 오늘의 SF, 간략사 >

1560년 06월 12일
  일본의 지방 영주인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오케하자마(桶狭間)에서 유력 영주인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義元)에게 승리하다.

1776년 06월 12일
  미국의 버지니아 의회에서 버지니아 권리 장전(Virginia Declaration of Rights)을 채택하다.

1929년 06월 12일
  독일에서 안네 프랑크(Annelies Marie Frank)가 태어나다. 1942년 6월 12일 안네 프랑크 일기를 쓰기 시작하다.

1967년 06월 12일
  소련에서 금성 탐사선 베로나 4호(Venera 4)를 발사하다.

1990년 06월 12일
  소비에트 연방(소련) 내의 러시아 연방 공화국(Russian Federation)이 주권 선언을 채택하다.


< 오늘의 SF >

1560년 06월 12일
  일본의 지방 영주인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오케하자마(桶狭間)에서 유력 영주인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義元)에게 승리하다.

  젊었을 때 멍청이(うつけ)라 불리던 노부나가는 세력 다툼을 벌이면서도 한편으로 쇼군과 조정의 권위를 존중하던 당시대 지방 영주(다이묘)와는 확연하게 다른 인물이었다.
  훗날 '천하포무'를 선언하고 쇼군을 몰아냈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 성지 중 하나였던 히에이산에 불을 지르는 등 기존의 권위를 완전히 무시하는 노부나가의 등장, 그리고 10배 가까운 압도적인 전력 차를 극복하고 요시모토를 처단한 오케하자마 전투의 승리로 오랜 기간 안정되어 있던 전국 시대는 급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뛰어난 군주였던 요시모토의 죽음으로 이마가와 가문은 혼란에 처했고, 이 틈을 타 훗날 최종적인 승자가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가 이마가와 가문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었고, 배후의 위험을 떨쳐낸 노부나가는 북쪽과 서쪽으로 진격, 세력을 급격하게 넓혀나갔다.
  비록 노부나가는 부하인 아케치 미즈히데(明智光秀)의 배신으로 패권을 이루기 직전에 타계하고 말지만, 그의 권력은 부하인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이어졌다, 히데요시는 일단 전국 시대를 종결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 정벌을 감행하여 조선이나 명 등 당시 동아시아 삼국의 상황에 큰 영향을 주었다. (서민에 지나지 않았던 히데요시가 일본의 패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기존의 권위를 무시하는 하극상을 내세운 노부나가의 영향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첫발이기도 했던 오케하자마 전투 역시 노부나가가 훗날 보여준 파격적인 행동에 어울리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당시 요시모토는 배후의 다케다, 호죠 가문과 동맹을 맺고 2만이 넘는 대부대(25,000에서 50,000)를 이끌고 교토로 향했다.  요시모토의 진격로에 놓인 오다군은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상황에 처했다. 항복과 항전의 논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노부나가는 6월 12일 새벽 3시 경 이마가와군이 공격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몸을 일으켜 춤을 추고는 얼마 안 되는 병사를 이끌고 출정했다.
  뒤늦게 이 소식을 들은 가신들은 병사들을 이끌고 노부나가를 쫓았고, 10시 경에야 노부나가는 2,000여 병력을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요시모토의 본대를 발견, 일제 기습 공격에 나섰다. 승리를 과신하고 병력을 분산시킨 결과 요시모토의 본대는 약 5~6,000명. 갑작스러운 기습에 당황한 요시모토군은 붕괴되었고 전투 와중 요시모토가 전사하고 만다.
  10배가 넘는 대군에 정면으로 돌진하여 본대를 격파한 이 전투는, 일본 역사상 가장 화려한 역전극으로 역사에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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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케하자마 전투.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베는 오다의 부하 ]


1776년 06월 12일
  미국의 버지니아 의회에서 버지니아 권리 장전(Virginia Declaration of Rights)을 채택하다.

  만장일치로 채택한 이 선언문은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로서,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과 함께, 이러한 권리를 위협하는 존재는 설사 나라의 정부라고 해도 정당하게 반격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즉, 사람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의 권위나 이익을 비롯한 그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국가나 정부의 권위보다 개인의 권익을 중시하는 내용은, 국가 이전에 개인이 존재했으며, 국가는 개인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의견에 따른 것이다.

  버지니아 권리 장전에 담긴 "선천적인 자유권과 독립권", 그리고 "부당한 정부에 대한 반역의 권리"는 훗날 미국의 독립 선언과 프랑스 혁명에서의 시민 권리 선언 등 수많은 혁명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고, 지금도 미국을 비롯한 여러 자유주의 세계의 기본적인 규정으로서 남아있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버지니아 권리장전에서 시작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헌법의 초반에 명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많은 나라에서 국가의 권위를 중시하여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사례가 종종 등장하고 있다.


1929년 06월 12일
  독일에서 안네 프랑크(Annelies Marie Frank)가 태어나다.

  훗날 <안네의 일기>라는 책을 통해 세계에 알려지는 안네 프랑크는 유대인에 대한 차별 정책을 내세우는 국가 사회주의 도이치 노동자당(NAZIS)가 정권을 장악한 후 박해를 피하고자 일가와 함께 네델란드의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했다.
  2차 대전이 일어나 독일에 점령된 네델란드에서도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면서, 안네 프랑크의 가족은 다른 가족과 함께 비밀집을 만들어 숨어 살게 되었다. 
  1942년 13살의 생일날 선물로 일기장으로 받은 안네는 그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비밀집에서의 생활을 적어나갔다.
  1944년 8월 4일 안네 일가는 누군가의 밀고로 보안 경찰에 체포되어 제각기 각지의 수용소로 끌려가 사망했다. 살아남은 것은 안네의 아버지인 오토 프랑크 한 사람 뿐. 전쟁이 끝나고 풀려난 오토 프랑크는 당시 몰수된 물건을 돌려받고 그 안에서 딸인 안네가 쓴 일기를 발견했고, 이를 편집해서 자기 가족이나 함께 살던 가족의 친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오래지 않아 이 일기는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서 주위의 권유로 일기를 정식으로 출판하기에 이른다. 13살부터 15살의 기간 동안 한 소녀가 쓴 일상은 이후 세계 각지에 번역 출판되어, 이 작품을 읽은 많은 이가 전쟁과 인종 차별 등에 대해 인식하고 고민하게 해 주었다.
  한편 반홀로코스트 주의자들 중에는 안네의 일기가 존재하지 않았다거나 안네 자신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지만, 훗날 여러 차례의 연구 결과 안네가 실존했으며, 일기 역시 전쟁 중에 안네 자신이 썼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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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네 프랑크의 사진이 새겨진 우표. 이 작은 소녀가 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



1967년 06월 12일
  소련에서 금성 탐사선 베로나 4호(Venera 4)를 발사하다.

  지구 궤도에 올라 금성을 향해 날아간 베로나 4호는 10월 18일 금성의 궤도에 도착하였고, 탑재하고 있던 탐사 캡슐을 금성의 대기에 떨어뜨렸다.
  금성의 가혹한 환경에 대비하여 20기압에도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진 탐사 캡슐은 낙하산을 이용해 천천히 하강하며 다양한 정보를 보내왔다.

  비록 베로나 4호는 금성의 표면까지 버티지 못했지만(착륙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고도 29km 지점에서 통신이 두절되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 밖 다른 행성에 돌입하여 대기 분석 등을 진행하였다.
  베로나 4호의 분석으로 금성은 이제껏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높은 밀도의 대기를 가졌다는 것이 밝혀졌고 이후 훨씬 강화된 탐사기를 보내기에 이른다.
  당시 소련에서는 베로나 4호가 무사히 지상에 착륙했다고 주장했지만, 그 다음 날 도착한 미국의 금성 탐사선 마리나 5호가 금성의 대기가 최소한 25기압에서 100기압에 이른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주장을 철회했다. (결국 소련은 베로나 7호에 이르러 무사히 지면에 착륙하여 탐사를 진행하게 된다.)
  소련의 베로나 계획이나 미국의 마리나 계획 등에 의한 금성 탐사로 금성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높은 기압과 고온의 행성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SF에서 유행하듯 등장했던 금성인 이야기는 물러났고, 이를 대신하여 금성의 테라포밍을 중심으로 한 여러 작품이 선보이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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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담의 일러스트레이터인 야스히코 요시카즈씨의 비너스 전기. 이처럼 테라포밍된 금성을 무대로 한 SF는 베로나 4호 이후 늘어나기 시작했다. ]



1990년 06월 12일
  소비에트 연방(소련) 내의 러시아 연방 공화국(Russian Federation)이 주권 선언을 채택하다.

  소련의 중심 세력이었던 러시아에서 독자적인 주권을 선언함으로서 연방의 붕괴는 더욱 가속화되었고, 결국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주권 국가의 일시적인 연합(독립 국가 연방)을 거쳐, 독자적인 나라들로 나누어졌다.
  러시아의 주권 선언은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체제를 위해 러시아가 희생할 수 없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소련이 러시아로 바뀌면서 러시아는 군사력과 경제력 등의 힘은 대부분 독점한 채, 부양해야 할 인구를 대폭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영토는 3/4로, 인구는 절반(1/2)으로 줄어들었는데, 석유 등 자원이 나는 땅은 대부분 러시아가 차지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주권 선언은 러시아에 속하지 않은 소비에트 연방 내 다른 나라 국민에 대한 책임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라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부담이 줄어든 러시아에서는 국민의 삶이 좀 더 안정적으로 바뀐 반면, 러시아 이외의 구소련에 속한 나라의 삶은 소련 시대에 비해 훨씬 곤궁해지고 말았다. 더욱이, 석유나 가스 등의 자원이 풍부한 지역을 대부분 독식한 러시아는 이를 바탕으로 경제적인 힘을 얻고 다시 강대국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주권 선언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21세기에도 구 소련에 속한 나라들에 대한 러시아의 지배력은 결코 줄어들지 않고, 도리어 강화되고 있는데, 이는 하나의 나라로 통합하지 않고 동맹이나 협력 국가라는 이름으로 이들 나라를 간접 지배하는 국제 관계의 일종으로, 아메리카 여러 나라에 대한 미국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2004년 06월 12일
  1.3kg의 별동별이 뉴질랜드의 엘러슬리(Ellerslie, New Zealand)의 한 주택에 떨어져 큰 피해를 주었지만,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