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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 한 무리의 우주선을 본 적이 있었다. 굉장히 크고 빛이 나서, 이 세상의 것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갑자기 눈 앞이 새하얘졌다. 내가 기억하는 건 여기까지..."


  이 같은 이야기는 항상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변화와 함께 세상은 바뀌어가지요.


  어렸을 때 어떤 일로 가슴에 큰 흉터가 생긴 주인공 히로세 코이치. 하지만 그에 대한 기억은 존재하지 않은채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아니 있었습니다.)


  괴상한 가면을 쓴 소녀가 "오랜 만이야. 네 목숨을 받으러 왔다."라면서 나타나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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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의 삶은 급격한 변화를 겪게 마련이죠. 이 여학생은 정신이상자가 아니라면, 뭔가 특별한 존재일 것이고, 그것은 주인공의 삶을 바꿉니다.


  아니나 다를까.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카페에서 일을 배우고 싶었을 뿐인 평범한 소년은 이윽고 ‘뭔가’의 습격으로 할아버지를 잃을 처지에 놓입니다. 그리고 그 소년과 할아버지를 구한 것은 오래 전 소년에게 ‘심장’을 나누어주었다는, 자칭 ‘지구 침략을 위해 찾아왔다는’ 우주인 소녀.


  그리하여 이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후엔 뻔한 전개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외계인의 병기가 나타나 마을을 파괴하고, 가족과 친구의 목숨을 위협하고, 결의를 다진 소년은 소녀와 손을 잡고...



  하지만 “어떤 비공사의 추억”을 애니메이션과는 또 다른 풍의 만화로 엮어내어 호평 받은 오가와 마이코는 여기에서 독자들의 기대를 배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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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강력한 힘으로 외계인의 병기를 때려 부수고 할아버지를 구한 소녀는, ‘둘이서 함께 이 별을 정복하자.’라는 제안과 달리 정복 활동에는 나서지 않습니다. 훈련이고 뭐고 등장하지 않죠. 단지 학교에서 읽던 책을 넘겨줄 뿐.


  “야아. 즐거웠어. 다른 사람하고 같이 독서하는 것도 꽤 좋구나.”

  “이봐, 우주인은 공격 안 해?”

  “또 나타나서 공격했으면 좋겠어?”

  “정복하기 위한 작전 같은 건 없어?”

  “엥... 몰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진 쿄스케는 방과후에 만나자는 그녀의 약속을 저버리고 돌아와 버립니다. 뭔가를 시작하고 싶었지만, 단지 ‘기다리라’라고만 들었을 때의 마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


  “처음부터 결과를 기대하지 마. 마음을 느긋하게 먹으라구.”


  몸이 약해 입원 중인 동생의 말은 그런 코이치에게 빛이 되어 줍니다.


  “따분한 일을 매일 계속하다보면 언젠가 그에 따른 결과가 빛을 발하는 것 아닐까?”


  그녀의 비밀기지(라고 쓰고 집이라고 읽는)를 방문하고, 코이치가 연습하다 실패한 라떼 아트를 마시는 일상. 잔잔하게 흘러가는 일상... 하지만 어느 날 결석한 그녀를 찾아간 끝에,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누워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죠.


  “요즘 히로세와 어울리게 된 이후로 매일이 즐거워. 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었는 걸. 망치고 싶지 않았을 뿐... 화내게 할 생각은 없었어.”


  그런 그녀에게 코이치는 말합니다.


  “넌 이제 외톨이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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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일생. 하지만 왠지 모를 초조감에 가득한채 무엇을 어찌할지 모르고 방황하던 소년.

  지구 정복을 위해 키워져서 이제껏 갖지 못했던 여유를 홀로 지키고자 무리했던 소녀.

  그 둘은 이렇게 다시 만나 이야기를 끌어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미지로 가득차 있다고 합니다. 지구인 소년과 우주인 소녀. 당연히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르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어느 쪽이건 먼저 손을 내밀지 않으면 서로를 알아갈 수도, 유대감을 쌓아나갈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요? 잘 알 수는 없지만, 순정만화 풍의 부드러운 화풍에서 그려지는 일상과 다소 과격하기까지 한 이야기가 왠지 모르게 잘 어울린다는 느낌만으로도 이후를 기대하게 합니다.


  새로운 만남에는 항상 두려움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이 작품에 손을 내밀기에는 4500원이라는 돈과 시간의 희생이 필요했지만, 지금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이 작품에 손을 내밀어서 다행이라는 마음, 그리고 앞으로 이 작품과 함께 할 시간이 기대된다는 마음이 가득하다는 겁니다.


  일본에선 현재 7권까지 나왔습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개되었겠지요. 앞으로 계속 번역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나와주어 이 '유대감'이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