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인류는 환생했고, 문명은 쇠락했으며, 한계는 우리 곁에 있었다.”
우주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마련한 ‘신데렐라 프로젝트’가 비극적으로 좌절된 뒤, 인류는 우주와 미래를 향한 비전이나 철학을 도외시한 채 복제 기술을 이용한 ‘환생’ 시술을 개발해 젊은 육체로 갈아타고 생명을 연장하는 일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갈라파고스적 전환’이었다. 그로 인해 성장판이 닫힌 성인처럼 아무런 파동 없이 안정된 삶을 굳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인류의 문명은 점차 쇠락했고, 인류는 절대적 한계 앞에서 자기 정체성과 존재감을 상실한 채 제 몸 바꾸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느 날 85세의 ‘김 수지 다비치 소접시 백이십 종묘 메밀 준’ 앞에 자기와 꼭 닮았지만 더 젊어 보이는 ‘칠’이 나타난다. 그의 이름은 ‘김 수지 다비치 소접시 백이십 종묘 메밀 칠 준’으로 메밀보다 이름 하나가 더 많았다. 그리고 그 역시 어김없는 ‘허깨비’, 즉 이름의 주인이 환생 시술을 통해 다시 젊은 몸으로 갈아탄 다음 내다버린 육체였다. 메밀과 칠은 각자의 팔뚝에 새겨진 6개와 7개 이름의 유래와 주인을 찾아 길을 떠나는데 ....

 

 

출판사 추천글

 

신예 작가의 기발한 SF 장편소설
민음사가 창립 40주년을 맞아 제정한 제1회 <세계의 문학> 신인상에 소설 '날씨'로 당선된 작가 김상묵의 첫 번째 SF 장편소설이다. 수상 이후 오랜 시간을 준비해서 야심차게 내놓는 SF소설로서, 기발한 상상력과 치밀한 문장력으로 디스토피아적 세계와 인간 존재의 한계성에 대해 때로는 사실적으로 때로는 우화적으로 파고든 그로테스크한 작품이다.
‘신데렐라적 전환’에서 ‘갈라파고스적 전환’으로 이동하는 시대정신, 복제인간을 통한 ‘환생’과 그 결과로 남게 된 ‘허깨비’라는 버려진 육체, 그리고 무수하게 복제되어 용의자를 추적하는 ‘동일체’ 등을 통해, 마치 <블레이드 러너>, <인터스텔라>, <매트릭스> 등에서 나타난 영화적 상상력이 소설 속으로 오버랩된다.
SF소설의 경우 대개 미래사회를 다루면서 천편일률적으로 서양식 혹은 일본식(필립 K. 딕의 영향일 터) 무대를 설정하는 데 반해, 이 소설은 기발하게도 서울 근처의 수도권을 무대로 삼고 있어서 훨씬 참신하고 친근한 느낌을 준다.(까치산시장, 종로, 종묘, 동대입구역, 청라지구 등) 특히 작가의 작명 센스가 탁월하게 드러나는 작품으로서, 주인공의 이름인 ‘김 수지 다빈치 소접시 백이십 종묘 메밀 칠 준’을 비롯해 ‘금주’, ‘그늘에 쉬어’, ‘일식’, ‘소리’ 등 다른 등장인물이 지닌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도 상당히 흥미롭다. 또한 작품 전체에 걸쳐 존재와 이름에 대한 탁월한 성찰이 깔려 있으면서도,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고 깊이와 경쾌함을 함께 버무리는 솜씨가 유려하다.

현대인의 존재양식에 대한 또 다른 은유, 허깨비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복제인간이자 허깨비라고 불리는데, 이들은 어쩌면 우리들 자신의 일상적 존재양식에 대한 은유이기도 할 것이다. 늘 태생적 한계에 시달리고, 몽환적으로만 과거를 소환하며, 허깨비처럼 떠돌다가도 결국에는 자신에게 붙여진 이름과 존재 사이의 의미를 찾기 위해 기어이 삶을 내던지고 마는 우리들 자신 말이다. 그래서 복제인간의 이 여행은 형식적으로 이름과 과거를 찾는 것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신의 존재와 가치와 길에 대한 우화적 여행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목 ‘한계에서’의 실마리는 바로 그 지점 언저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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