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SF 클럽의 고스트라이더 게시판에 쓴 글을 제목과 본문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모임에 가지 않았다고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 여기에 잘못했다고 털어놓으면서 제가 생각했던 얘깃거리 하나를  적어봅니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이번 창작 모임에 다룰 주제입니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저는 이 두 가지 중에 하나만 부각되도록 나타낼 수 없습니다. 한 세계에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같이 있으며 어느 누구에는 유토피아지만 다른 누구에게는 디스토피아다. 이렇게 바라봅니다.

  고려시대. 이 시기도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공존한다고 봅니다. 지금도 경탄하게 만드는 고려 청자를 비롯해 고려 시대에는 수준 높은 수공예품이 많이 나왔습니다. 귀족은 그렇게 만든 작품에 둘려싸여 유토피아처럼 지냈습니다. 그렇지만, 이 물품을 만들어 내는 이들은 상당한 고충에 시달렸습니다. 향소부곡. 교과서에서는 천민으로 기술하는 계층 중에서 소(所)에 해당되는 마을에 산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하는 왕실과 귀족에게 필요한 물품을 만들어내야 부담까지 떠앉아야 했습니다. 이들에게는 사는 터전부터가 디스토피아일 수 밖에 없겠습니다.

  5백년 고려사. 이 책의 188,189 쪽에서 이 얘기에 맞을  내용을 찾았습니다. 그 책에 기술한 내용을 주제에 맞추어 기술해 봅니다. 공암촌(孔巖村)이라는 소가 있었습니다. 그곳은 먹(墨)을 만드는 업무를 떠맡았으며 해마다 5천 개를 만들어 중앙에 바쳐야 했습니다. 그 소가 포함된 고을의 수령을 맡았던 이인로(李仁老)가 먹을 만드는 고충이 얼마나 큰지 그 분이 남긴 파한집(破閑集)에서도 잘 나타냈다고 합니다.


    <이인로는 개성에서 생활할 때에는 세상에 흔한 것이 먹이라 여겼는데 이곳에서 수령 노릇을 하면서 먹만드는 어려움을 체득하고 먹의 귀함을 새삼 깨달았다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5백년 고려사에 나온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우리 나라 역사에서도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공존했다는 현실을 제기해 봅니다. 이 얘기를 적으면서 오늘 있은 모임에 참여하시는 분을 비롯한 이 글을 읽는 분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