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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도살장>은 독특한 유머와 풍자를 쓰는 것으로 잘 알려진 커트 보네거트(커트 보니것)의 작품입니다. 반전(反戰) 문학의 대표작이자, '타임'지가 선정한 100대 문학에 포함된 작품으로 지금도 미국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요.

  월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후반에 선보인 이 작품은 1943년의 오늘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실제로 벌어진 연합군의 대폭격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커트 보네거트는 독일군의 포로로 본래는 도살장이었던 포로 수용소에 갇혀 있었는데, 그때 겪었던 드레스덴의 대폭격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집필한 것이지요.

  '이 책은 비행접시를 보내오는 행성 트랄파마도어의 전보문 형식으로 쓴 정신분열성 소설이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외계인에 납치되었다고 주장하는 빌리 필그램이란 인물이 자신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펼쳐내는 내용인데, 노년의 빌리 필그램과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있던 시기의 빌리 필그램, 그리고 전쟁 시의 빌리 필그램의 3가지 시점이 계속 뒤섞여 보여지면서 혼란 스러운 느낌을 갖게 하지요.

  이것은 빌리 필그램의 의식이 발작적으로 시간을 여행하기 때문에 벌어진다고 이야기되지만, 사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빌리 필그램이라는 인물이 -작중의 다른 이들이 생각하듯- 단순한 정신병자일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그가 발작적인 시간 여행을 하게 된 것은 제2차 대전 중 독일군이 '제5도살장'이라 불리던 연합군 포로 수용소에 갇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제5도살장이 있던 드레스덴시는 2차 대전 중 유럽 역사상 최악의 학살 사건이라 불리기도 하는, 드레스덴 폭격을 당하고 맙니다.

  시체를 묻기도 어려웠기에 화염방사기로 화장할 수 밖에 없었다고 이야기되는 사건, 수십년이 지난 뒤에도 엄청난 시체가 다시 발견되었을 만큼 참혹한 그날의 일을 겪지 않았다면 빌리 필그램은 평범한 인생을 살아갔을지도 모르는 것이지요.

  그의 이야기는 풍자와 유머로 보이자만, 커트 보네거트의 여러 작품이 그렇듯 그의 인생은 굉장히 슬프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시간 여행'을 한다는 그는 앞으로 일어날 일(거대한 참사)을 알고 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점에서 더욱 슬픕니다.

  드레스덴 폭격으로 도시가 '달의 표면'처럼 변해 버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 그것이 그가 '의식의 시간 여행'이라는 도피를 선택하게 된 계기일지도 모르는 것이지요.
  그는 자신을 납치한 트랄파마도어인들에게 그것을 배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들 역시 앞으로 일어난 참혹한 전쟁으로 그들 자신이 멸망할 것을 알면서도 이를 어떻게 하지 않으니까요.

  "우리가 전쟁에 대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그래서 우리는 그냥 전쟁을 보지 않을 뿐이오. 무시해버리는 거지. 우리는 영원토록 즐거운 순간들만 보며 지내요."

  트랄파마도어인들은 이렇게 말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빌리 자신이 자신에게 외치는 변명일지도 모릅니다. 드레스덴 폭격이 일어난 그 날의 참상은 그가 이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는 것이지요.

  물론, 그의 말대로 그가 의식의 시간 여행자이며, 정말로 트랄팔마도어인들에게 납치되었다가 돌아온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그는 참상이 일어날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래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슬픈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그렇기에 그의 의식에선 드레스덴 폭격의 피해자도 '그냥 가는 것'으로 끝나고 맙니다. 그렇기에 더욱 안타까운 것입니다.

  이 작품은 쉽게 읽히는 작품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여하튼 시점이 오락가락하고 글도 이리저리 오가는 느낌이 드니까요. 하지만, 차근차근 읽다보면 이것이 그렇게 쓰여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안타까움이 밀려오지요.

  그것이 이 작품이 최고의 반전(反戰) 소설의 하나로 불리는 까닭일 겁니다.  




여담) 다행스럽게도 이 작품은 아직 판매하며, 그것도 인터넷 서점 등에서 반값으로 살 수 있습니다.^^

추신) 드레스덴 폭격은 바로 1945년의 오늘 벌어진 일이기에 이 작품을 돌이켜 보기에 좋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 자신은 그것을 체험하지 못했지만...

참고 : 오늘의 SF - 0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