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라이트 마일, 우주시대의 건설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분쟁, 그리고 두 사나이와 신세대의 드라마 (02월 25일자)


  오늘의 SF가 조금 늦어지면서 오늘의 추천작도 밀려 버렸군요. 일단 2월 25일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2월 25일에는 매우 많은 날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어릴 때 재미있게 보았던 <꼬마 삼보>의 작가 헬렌 배너먼이 태어난 날이기도 하지요. 삼보를 잡아먹으러 왔던 호랑이가 서로 다투면서 꼬리를 물고 나무를 돌다가 버터가 되어 버린다는 이야기를 빙긋 웃으며 봤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984년 8월에 첫 비행을 시작하여 작년 2월 25일 38번째이자 마지막 임무에 나섰던 디스커버리호의 발사 장면입니다. 25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다채로운 임무를 수행한 디스커버리호의 마지막 임무는 이탈리아에서 만든 모듈을 국제 우주정거장에 전하는 일이었지만, 동시에 로보노트 2라는 우주 로봇의 실험을 진행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상체 모양으로 생긴 로보노트 2는 이제까지의 로봇팔 같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세밀한 조작이 가능한 로봇입니다. 물론 우주조종사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우주 조종사가 임무에 나설 때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감압 과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급한 일이 생겨도 쉽게 나갈 수 없지요.
  반면 로보노트2 같은 로봇은 언제라도 나가서 편하게 작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위험한 작업도 대신해 줄테고요.
  그런 점에서 로보노트 2의 탄생은 앞으로의 우주 개발에서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감압 과정이 필요하다’라는 것은 과학책이나 잡지, 또는 신문에서 본 것이 아닙니다. 한 만화에서 보고 알게 된 것이었죠. 그 만화에서는 놀랍게도 로보노트 2와 거의 비슷한 디자인의 로봇이 등장하여 활약합니다. 


  2월 25일에는 바로 이 작품을 추천합니다. <일평> 등의 선이 굵은 그림체와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만화로 알려진 작가 오타가키 야스오의 SF 작품 <문라이트 마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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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라이트 마일>은 두 사람의 ‘사내’를 주역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고로와 로스트먼. 일본인과 미국인, 서로 고향은 다르지만, 자일 파트너로서 수많은 명봉을 제패한 학생 클라이머인 두 사람은 에베레스트 등반 중 눈사태를 만난 프랑스 등산대의 여성을 발견합니다. 둘이 ‘백설공주’라고 이름붙인 여성은 내장이 손상되어 그들은 오직 그녀의 죽음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지요. 그녀의 죽음을 뒤로 하고 두 사람은 장비도 거의 잃어버린 채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고, 그 너머에 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과 달을 봅니다. 그리고 둘은 더 높은 곳. 우주를 향해 가기로 합니다.
  그리고 우연히도 바로 그 날 NASA가 발사한 달자원탐사위성에 의해 핵융합로의 차세대 연료인 헬륨3가 달에 대량으로 매장된 것이 판명되고, 인류는 다시금 달을 향해 눈을 돌립니다.

  시간이 흐르고 두 사람은 각자의 방법으로 우주로 향합니다. 하지만, 우주는 지상의 정치와 분쟁이 그대로 옮겨진 모습으로 그들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달의 패권을 노린 싸움에서 둘은 동료가 아닌 모습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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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문라이트 마일은 달 개발의 과정과 발전을 그려나간 작품입니다. 일전에 소개했던 <프라네테스>가 이미 달 개발이 많이 진전되어 우주의 삶이 현실이 된(그래서 여행객도 적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이고 <트윈스피카>가 이제 겨우 우주로 눈길을 돌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문라이트 마일>은 본격적으로 우주로 향해서 달세계의 미래를 건설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지요. 동시에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달세계의 패권 경쟁을 다룬 작품이기도 합니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이들과 제3세계……. 정치, 군사적인 대립이 공공연히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 같은 대립은 ‘테러’ 정도로 끝나지 않습니다. 가히 ‘전쟁’이라 불러도 될 것입니다. 미국은 다른 나라들 몰래 달의 뒷면에 기지를 세워두고 있으며, 스텔스 우주 전투기를 동원하여 중국의 유인 우주선을 격추하러 나섭니다. 중국 역시 ‘인해전술’로 미국에 도전하고 지구 궤도와 달세계는 패권 분쟁의 마당이 되지요.

  달에서의 모든 것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축복받아야 할 루나리안(달에서 태어난 인간)의 탄생마저도 정치적인 목적으로 거래됩니다. 그만큼 사실적이면서도 냉철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지만(한편으로 초반에는 그만큼 선정적인 연출이 눈에 걸리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패권 분쟁 속에서도 다채롭게 펼쳐지는 인간들의 교류가 눈에 띕니다.

  이 작품은 우정의 이야기인 동시에 가족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화이트 칼라와 블루 칼라의 대립, 민간과 군대의 대결에 이어 중국과 미국의 분쟁으로 이어지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우주 개발에 도태된 제3세계의 문제까지 대두되니까요.

  이렇듯 다양한 대립과 갈등 속에 고로와 로스트먼의 대결은 한편으로 자녀를 위한 ‘부모의 싸움’으로 진전되어가며 새로운 세대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지구와 우주 세대의 갈등으로...

  그만큼 다채롭고 풍성한 이야기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 즐겁지만,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에선 22권까지 나왔지만, 우리나라에선 처음 소개하던 세주문화사가 문을 닫고 뒤를 이은 서울문화사에서 꽤 느리게 나오고 있거든요. 대여점에서 인기를 끌기 어려운 작품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트윈스피카>처럼 아예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니 다행일까요? 앞으로도 꾸준히 나와주길 기대할 뿐입니다.

  
  끝으로, 앞서 소개했던 감압의 문제와 ‘로보노트2’를 닮은 로봇은 긴급 사태에서 등장합니다. 감압 문제는 급하게 우주복을 입고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전개되었습니다. 우주복은 움직이기 쉽도록 어느 정도 부드러운 재질로 되어 있는데, 만일 우주복 내부가 1기압 상태라면 우주복은 부풀어 올라서 움직이지 못하게 됩니다. <플라네테스>에서 등장한 딱딱한 소재의 우주복이라면 문제가 덜하지만, 아무래도 무겁고 불편하죠. 특히 관절이나 손가락 같은 부분 때문에. 때문에 우주조종사의 우주복 내부는 보통 0.3기압 정도로 감압하는데 이 과정을 지나치게 빨리 진행해 버리면 잠수병과 비슷한 증세를 겪게 됩니다. 때문에 보통 12시간. 짧아도 8시간 정도 걸린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긴급 사태에서 주인공 일행은 6시간 만에 감압 과정을 거칩니다. 고로와 로스트먼 등 클라이머로 숙련된 이들조차 쉽지 않은 일이죠. 그래서 셋 중 한 명은 기절하기도 했고요.

  이후 고로의 후배뻘 우주인이 ISS에 올라갔을 때 급하게 외부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번에는 6시간의 여유조차 없었지요. 그런데 미국 모듈에서 아무도 모르던 이 로봇이 등장합니다. 그야말로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이 덕분에 ISS의 사고는 처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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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문라이트 마일>에서는 거의 엑스파일 수준의 이야기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불신을 낳고 분쟁의 원인이 되고 전쟁으로 비약되는 것이지요.

  그에 비하면 로보노트 시리즈는 개발 초기부터 당당하게 소개되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1997년에 처음 개발이 시작되었고 초기 모델이 이미 2002년에 공개 실험을 진행했죠. <문라이트 마일>에 등장하는 로봇은 아마도 여기에서 착안한 것이 아닐까요?

  이를 보면 현실의 우주 개발은 <문라이트 마일>에 비해 비교적 협력적으로 잘 진행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는 <문라이트 마일> 이상의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볼 수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