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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년 이탈리아 출신 지도 제작자 크리스토발 코론의 항해는 대항해시대의 새로운 막을 열며 신 시대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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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대륙의 발견… 이것은 한 세계에는 풍요를, 또 한 세계에는 재앙을 가져왔다. ]
 
‘카리브해’를 향한 대여정… 새로운 황금길이 열린 것이다.
 
황금과 재보로 가득한 미지의 세계… 새로운 땅 아메리카는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만을 세계의 전부라고 믿었던 유럽인들에겐 신비의 세계, 미지의 땅이었다.
이제껏 보지 못한 기묘한 식물이 자라는 그 세계에는 입에서 연기를 뿜어내는 원주민이 살고, 말을 하는 새와 사람을 한 입에 삼켜버리는 거대한 뱀이 우글거렸다. 황금에 눈이 어두워 이곳을 찾아온 이들은 갈색 피부의 원주민들이 보여주는 수많은 신비에 빠져들었고 전설을 만들어냈다.
살아 움직이는 시체, 영생을 가진 마술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깊은 바다와 숲 속의 무수한 공포들…
십자가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미신과 정령의 세계이자, 이성과 과학의 영향을 받지 못한 암흑 세계, 전설이 살아 숨쉬는 미지의 세계를 떠도는 이들은 십자가가 아닌 부적을 싣고 바다로 떠났고, 주문을 외우며 밀림을 탐험했다…
 
 
수많은 전설과 이야기… 신화가 살아 숨쉬던 세계. SF와 환상 소설 작가 팀 파워즈(Timothy Thomas Powers)가 신세계에 감추어진 또 하나의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그것도 역사에 이름을 남긴, 실존했던 한 해적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때는 18세기. 해적의 황혼 시대… 카리브 해의 지배자였던 에스파니아가 물러나고 유럽 끝의 작은 섬나라 영국이 신대륙의 새로운 지배자로 성장하던 그 시기에 악마 같은 모습으로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해적이 있었다.
 
에드워드 드럼몬드… 검은 수염이라 불리던 그는 수 년에 걸쳐 신대륙 전역에서 활약하며 무수한 전설과 비화를 남겼고 기묘한 형태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싸울 때면 수염에서 연기와 불길을 뿜어내며 적을 위협했다는 검은 수염… 수 년에 걸친 쟁쟁한 활약만이 아니라 그 미심쩍은 최후… 여기에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수많은 보물의 전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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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드워드 새치… 검은 수염의 이야기가 새롭게 펼쳐진다. ]
 
 
팀 파워즈의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원제 On Stranger Tides)>는 신대륙에 만연한-그 중 일부는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수많은 주술과 저주, 전설과 실제의 이야기를 뒤섞어 만들어낸 모험물이다.
 
검은 수염의 이야기, 실화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완전히 새롭게 쓰여진 이야기, 새로운 전설이라고 할만하다. 실제로 검은 수염은 주역이 아닌 조연… 최종적으로 악역일 뿐이니 말이다.
 
이 이야기는 평범한 선원에서 해적섬의 요리사를 거쳐, 결국엔 선장의 자리에 오르는 한 사내를 주역으로 그가 보고 체험한 일을 엮어나간다.
 
카리브해를 무대로 활동하는 상선 카마이클호의 선원 존 섄더낵(잭 섄디)은 우여곡절 끝에 배를 습격한 해적들의 일원이 된다. 처음엔 해적과 손을 잡은 기묘한 승객, 허우드의 딸 엘리자베스(베스)를 구하여 탈출하려 했지만, 자신만만한 해적선장 데이비드와 친분을 나누면서 점차 해적 활동에 열중해 간다.
어느새 데이비드 다음으로 중요한 자리를 맡게 된 잭 섄디는 젊음을 되찾게 해 주고 영생을 준다는 청춘의 샘과 관련한 모험에 휘말리게 되고, 해적에게조차 공포의 대상인 검은 수염 새치와 얽히게 되는데…
 
청춘의 샘을 이용해 아내를 되살리려는 주술사 허우드, 그의 제자이지만 또 다른 목적을 가진 레오 프렌드, 역시 청춘의 샘을 이용해 영생과 새로운 삶을 얻으려는 검은 수염 새치… 그리고, 힘과 능력을 가진 적으로부터 엘리자베스를 구하려는 잭 섄디…
수많은 인물과 이야기가 얽힌 가운데 신비한 청춘의 샘을 둘러싼 기괴하고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이야기 속엔 살아있는 시체들이 배를 조종하고, 주술사들의 대결이 펼쳐지고, 청춘의 샘에서 영생을 찾아내는 등 온갖 미신과 저주가 가득하지만, 한편으로 충실한 고증과 연구, 작가 나름의 아이디어를 잘 버무려 ‘실제의 세계’로 가능성을 이끌어나간다. 바다 저편, 유럽에서는 사라져 버린 주술과 저주가 신대륙에만 남겨진 이유, 주술의 원리나 파해법 등… 이제는 신대륙에서도 사라져 가는 주술사의 입을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남기면서 팀 파워즈는 주술과 저주를 미신이 아닌 반쪽 과학… 연금술에 가깝게 현실에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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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리비안의 주술 인형? 이 영화처럼 이 작품엔 주술과 저주가 살아 숨쉰다. (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 / 디즈니 ) ]

 
그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설명에 집착하는 것은 팀 파워즈의 기존 작품에서도 보였던 단점이지만, 그것이 그의 작품을 살피는 또 하나의 매력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오락가락하는 듯 하면서도 결국엔 하나의 목적을 위해 매진하는 주인공 잭 섄디나 신랄한-냉정한?- 것 같으면서도 필요할 때 도움이 되는 해적 데이비스 같은 인물의 활약상을 빼놓을 수 없다. (악랄한 해적 선장이지만, 나름대로 우정을 갖고 유머 감각도 있는 데이비스의 모습에서 <캐리비안의 해적>의 유쾌한 해적 잭 스페로우를 연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전반적인 이야기는 비교적 암울하고 음산하게, 그리고 냉정하면서도 담담하게 전개되어 간다. 주역인 잭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이리저리 휩쓸릴 뿐이고,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에 말려들 뿐. 데이비스나 허워드, 또는 검은 수염 등이 뭔가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만 봐야 하는 상황에서, 도대체 무엇을 위해, 뭘 해야 할지 전혀 모른 채 떠도는 상황은 일상적인 스릴러나 모험물에 익숙한 이들에겐 다소 부담을 주는 것도 사실.
 
하지만, 그런 혼란 속에서도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한 나머지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매력이 이 작품엔 존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역시 팀 파워즈의 여타 작품이 그렇듯-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을 때 이제껏 쌓여온 복선과 암시가 하나로 연결되고, 인물들이 겪은 수많은 이야기가 연금술처럼 결합되어 느낄 수 있는 충실한 만족감이 담겨있다. 그야말로 책을 좋아하고, 독서를 즐기는 이들에게 어울리는 그런 책이라 할까?
 
한편, 라이트 노벨처럼 가볍고,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작품에 익숙한 이들에겐 조금 무거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러 상황을 지켜보는 관찰자로서(이를 테면 홈즈를 보는 왓슨처럼?)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이 작품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이 작품 속의 다채로운 이야기에서 충분한 매력과 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출간과 동시에 호평을 받은 이 작품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찾는 할리우드 제작자의 눈길에 들어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속편으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잭 스패로우가 등장하는 영화는 원작의 재미를 충실히 살리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영화를 보았다는 것에 부담 가질 것 없이 이 소설을 펼쳐보는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