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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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보신 작품 중에서 좋은 작품을 소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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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65
장르 | 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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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감독 | 앤터니 호로비츠 |
나라 | 영국 |
번역자 | 이은선 |
만화 [명탐정 코난]의 극장판에서 가상현실 게임을 통해 셜록 홈즈의 베이커 거리로 향하는 이야기가 있다. 비록 홈즈는 –한창 [바스커빌 가의 개] 사건을 해결하느라- 거리에 없지만, 홈즈가 살아있던 그 세계에서 모리어티와 대면하고, 아일린 애들러를 찾으며 당대의 살인범 잭 더 리퍼에 맞서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코난 도일이 만들어낸 셜록 홈즈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탐정이자 캐릭터이다. 코난 도일만이 아니라 수많은 작가가 그를 연출하고 영화나 만화에도 무수하게 등장하며 패러디와 오마주가 쏟아지는 존재. 만들어진지 130여년. 추리 소설 역사 속 수많은 탐정 중에서도 유독 그가 사랑받는 것은 코난 도일이 엮어낸 셜록 홈즈가 가상 현실 게임 속에 당장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 세계 전체가 살아있는 것 같기 때문일 것이다.
홈즈를 통해서 우리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으로 날아가 당시의 풍습을 접하며 기묘한 사건과 범죄자, 매력적인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4편의 장편과 56편의 단편... 열성팬이 아니라도 쉽게 접하고 읽을 수 있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홈즈와 왓슨이 실재하는 또 다른 영국, 베이커가를 탐험하고 즐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분명히 홈즈는 매력적이며 왓슨도 그렇지만, 그 세계의 수많은 이들은 스쳐 지나가듯 사라져 버린다는 점이다. 왓슨의 기록을 통해 그들의 단면을 볼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홈즈에 얽힌 사건이 있을 때만 가능한 일. 홈즈가 없을 때의 허드슨 부인이나 형사들은 뭘 하고 있으며, 아이린 애들러나 바이올릿 헌터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심지어 왓슨조차 사건이 없을 때 뭘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를 추측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셜록키언(아님 홈지언) 수준의 팬이 아닐지라도, 수없이 많은 홈즈 얘기를 보다보면, 사건만이 아닌 다른 부분도 알고 싶어지는 법.
코난 도일 재단에서 공식 ‘셜록 홈즈 작가’로 선정한 앤터니 호로비츠가 집필한 [모리어티의 죽음(원제:Moriarty)]은 바로 그런 팬심을 채워주는 즐거운 작품이다.
[모리어티의 죽음]은 제목 그대로 1891년 5월 4일. ‘범죄계의 나폴레옹’이라 불린 홈즈의 숙적 모리어티가 라이젠바하의 폭포에서 떨어져 죽은 바로 그 날을 기점으로 시작된다. 독자들은 물론 홈즈가 죽지 않았음을 알지만, 이 시점에서 홈즈 세계의 모든 이는 모리어티와 홈즈가 함께 죽었다고 알고 있는 상황. 당연히 홈즈도, 왓슨도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홈즈 세계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명탐정 코난 극장판] 같은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작품이 추리 소설이라는 것. 당연히 사건은 터지고, 그 사건을 해결할 탐정역이 필요하게 된다. 여기에 홈즈 스타일의 작품이라면 당연히 필요한 왓슨 역의 인물도.
여기서 작가는 두 사람의 인물을 주역으로 선보인다. 미국의 유명한 핑커턴 탐정 사무소에서 왔다는 탐정 프레더릭 체이스. 그리고 홈즈가 항상 ‘사건이 벽에 부딪쳤을 때만 찾아온다.’라며 비웃던 스코틀랜드 야드의 ‘바보’ 경감 애설니 존스...
홈즈 시리즈를 한번이라고 읽어본 사람이라면, 특히 애설니 존스가 나오는 [네 사람의 서명]을 읽어본 독자라면 당연히 프레더릭 체이스가 탐정역이고, 애설니 존스가 왓슨역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예상과 달리 홈즈역은 바로 애설니 존스.
왓슨의 표현에 따르면, 회색 양복을 입은 풍채 좋은(더 정확히는 뚱뚱한) 사나이. [네 사람의 서명]에서 등장하자마자 목쉰 듯 걸걸한 목소리로 홈즈에게 “그게 무슨 훌륭한 이론 덕분이 아니라 운이 좋아서였다는 걸 인정할 때가 되지 않았소?”라고 비아냥거리며, 홈즈로부턴 “재치 있는 사람들만큼 까다로운 바보는 없다!”라는 독특한 비평을 들었던(그리고 당연히 사건해결엔 도움이 안 된) 그 사내가 홈즈가 없는 지금, 처참한 범죄에 마주한 탐정역으로 재등장한 것이다.
홈즈 세계의 위기, 아니 절망의 순간이지만, 오랜 만에 등장한 애설니 존스는 심정의 변화라도 있었는지, 살이 빠져 외모도 바뀐 데다 홈즈 방식을 연구하여 상당한 성장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놀라게 한다.(그가 변하게 된 계기는 책의 마지막에 추가된 단편, [세 명의 여왕]에서 소개된다. 왓슨이 쓴 홈즈의 이야기니 홈즈팬에겐 이쪽을 먼저 보고 싶겠지만, 가능한 마지막까지 남겨두는 걸 권한다.)
처음 체이스를 만났을 때 한 눈에 그의 출신과 유럽에 온 이유, 게다가 사는 곳과 미혼이라는 사실까지 맞추는 장면에선 일찍이 왓슨이 홈즈를 처음 만났을 때를 연상케 할 정도. 홈즈의 방식을 배우겠다며 홈즈의 글을 모두 섭렵한 그의 능력은 대문자와 소문자만으로 된 복잡한 암호문조차 –홈즈보다 시간은 걸렸을지언정- 해독하기에 이른다.
여기에 홈즈처럼 어떤 추리를 하는지 마지막까지 감춤으로서 파트너인 체이스와 독자인 우리를 약 올리는 상황에 이르면, 가히 미니 홈즈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 140가지 담뱃재를 구분할 수 있다는 홈즈와 달리 ’90가지 밖에 터득하지 못했다’라는 겸손(?)에선 ‘괄목상대(刮目相待)’의 진정한 뜻을 깨닫기에 충분하다.
미국에서 달려온 체이스의 목적은 미국의 범죄계를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거물, 클래런스 데버루의 추적. 첩자를 통해 데버루가 모리어티와 손잡으려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영국으로 온 그는 스위스에서 시신을 마주하고 망연자실하지만, 때마침 찾아온 애설니 존스의 도움으로 수상쩍은 편지를 발견하고 추적을 시작한다.
홈즈 2호를 연상케 하는 존스의 활약으로 상황은 급진전되지만, 두 사람 앞에 놓인 사건은 그 이상으로 힘겹고 위험하며 끔찍하게 전개된다. 겨우 찾아낸 데버루의 측근이 참살되는가 하면, 폭탄 테러로 런던 경시청이 엉망이 되고, 심지어는 존스의 딸이 납치되는 상황. 데버루를 찾아갔던 미국 공사관의 항의로 해고 직전에 직면한 사소한(?) 위기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벼랑으로 몰리게 되지만, 체이스와 존스 두 파트너는 끈질기게 사건을 파고들며 거대한 범죄의 실체에 접근해 간다.
홈즈가 없는 자리에서 어쩌면 모리어티 이상으로 위험한 범죄의 거물을 상대해야 하는 애설니 존스와 프레데릭 체이스. 홈즈가 없는 홈즈 세계 속에 등불과 같은 두 사람의 발버둥은 참 흥미롭지만, 그 이상으로 재미있는 건 이 모든 이야기가 정말로 홈즈 세계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애설니 존스나 레스트레이드 같은 본래의 인물만이 아니라, 도일 작품엔 등장하지 않았던 애설니 존스의 아내에 이르기까지 모두 ‘홈즈’의 이야기에 어울리면서도 그들만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왓슨이 ‘평소엔 사교적이며 식사 자리에선 유머스럽다.’라고 했던 애설니 존스의 가족 만찬 장면에선 홈즈 얘기에선 보기 힘든 평범한 일상의 즐거움도 느껴질 정도. 그만큼 [명탐정 코난]의 가상 현실 게임처럼 홈즈 세계에 뛰어 들어가, 어딘가에 홈즈와 왓슨이 살아가는 그 세계, 베이커가를 여행한다는 현실감이 확 풍겨 오른다.
앤터니 호로비츠의 첫 홈즈 이야기, [실크 하우스의 비밀]이 코난 도일이 아닌 다른 사람도 왓슨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면, 이 작품 [모리어티의 죽음]은 왓슨의 이야기만이 홈즈 세계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한다.
앞으로 더욱 다채로운 홈즈 세계 이야기를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프레데릭 체이스의 손으로 기술된 애설리 존스의 이야기가 나를 매료시켰듯, [명탐정 코난]의 가상현실 이상으로 풍성하고 살아있는 홈즈의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