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회가 만든 SF도서관… "포스(Force)가 함께 하길" (조선일보)

조선 일보 사회면에 나온 취재 내용입니다.

운영 위원 모든 분들을 모시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지만, 다음에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길 바래봅니다.

이 기사를 통해서 더 많은 분들이 도서관을 찾아주시기를...

도서관은 꼭꼭 숨어 있었다. 11일 오전, 서울 지하철 4호선 사당역 근처 주택가. 단독주택이 촘촘히 들어선 골목길 담벼락에 'SF&판타지 도서관→'이라고 쓴 공책만한 간판이 붙어 있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꺾자 폭 1m짜리 계단이 방문객을 지하로 이끌었다. 무거운 회색 철문 뒤에 SF 마니아들의 세상이 있었다.

지난 4일 개관한 'SF&판타지 도서관'은 가정집 지하(80㎡·25평)에 세든 14석짜리 사립 도서관이다. 벽에는 '스타워즈' 등 SF 영화·소설·만화 포스터가 붙어 있다. '화성연대기' '나니아 연대기' 등 SF와 판타지 서적 8000여권이 사방에 빽빽이 꽂혀 있다.

이 도서관은 온라인 과학소설 동호회인 '조이SF' 회원 10여명이 만든 일종의 '아지트'다. 도서관장 전홍식(34·게임 시나리오 작가)씨는 "SF와 판타지는 '애들이나 보는 책'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다 큰 어른이 SF를 보면 주위에서 '괴짜' 취급 하기 일쑤"라며 "작년 4월쯤 회원들 사이에서 '아예 우리만의 도서관을 만들자'는 얘기가 나왔다"고 했다.

'조이SF' 회원 김명철(29·건설회사 직원)씨는 "그때만 해도 '에이~ 될까' 싶었다"고 했다. 일이 진전되는 둥 마는 둥 하며 봄 여름이 지나고 10월이 됐다. 전씨가 '덜컥' 일을 저질렀다. 3년 동안 게임회사에 다니며 모은 돈 1000만원으로 월세 50만원짜리 사당동 지하 창고를 빌리고, 자기 책 7000여권을 기증한 것이다. SF와 판타지 책을 내는 황금가지와 시공사 등의 출판사에서 소식을 듣고 '재고' 300권을 기증했다.
▲ 국내 최초 SF소설 전용 도서관에 운영위원 5명이 한군데 모였다. 왼쪽부터 박리라씨, 전홍식 관장, 홍성오씨, 박진우씨, 김명철씨./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회원들은 '생업'을 미루고 도서관 개관 준비에 몰두했다. 겨우내 배윤호(31·자영업)씨와 박진우(29·대학생)씨가 벽을 칠하고 전등과 환풍기를 설치했다. 서울대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있던 홍인수(28)씨는 지도교수의 눈총을 받아가며 전공(지리학)과 아무 상관없는 SF 도서관 장서 분류 작업에 매달렸다. 이들은 순번을 나눠 평일 오후 4시~밤 10시까지, 주말 오후 1시~밤 10시까지 도서관을 지키기로 했다.

출판 전문가들은 국내의 SF 팬이 5000명 남짓한 것으로 보고 있다. 1만명에 1명꼴이다. 18개월짜리 아들을 둔 홍성오(36·중소기업 연구원)씨는 "도서관에 오면 해방감을 느낀다"고 했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48) 교수는 "SF 팬들이 직접 도서관을 만든 것은 우리 사회의 '취향'이 그만큼 다양해졌다는 뜻"이라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재생산하려는 움직임"이라고 했다.

지난달 28일, '조이 SF' 회원들은 도서관 개관에 앞서 고사를 지냈다. 고사상에는 돼지머리 대신 '스타워즈'의 악역 '다스베이더'의 머리 모형이 올랐다. 도서관장인 전씨가 '스타워즈' 주인공들이 주고받는 명대사 "우주의 힘이 당신과 함께하길(May the Force be with you)"을 빌려 근엄하게 말했다. "우리 도서관에 '포스(Force)'가 함께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