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어제 과천국립과학관의 행사장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평소의 강연이라면 대학생이나 작가 지망생이나, SF팬(최소 고등학생 이상)들이 대부분이었던 반면, 어제는 절반은 부모, 나머지 절반은 부모와 함께 온 아이라는 구성으로 진행을 하게 되었지요.

  내용은 과학 사진과 영상(다큐멘터리 등)을 보여주고, 이와 연결하는 SF의 영상을 통해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 나가는 것...

  이번 행사를 위해 완전히 새롭게 준비한 강연이었고, 나이가 어리다는 점을 고려해서 영상과 그림만으로 펼쳐지는 강연이기도 했습니다만, 행사장에 들어서 좌중을 보는 순간 다소 걱정이 되기도 했지요. (행사장의 규모에 비해 인원은 적었지만, 분명히 말해 이제까지의 강연 규모 중엔 가장 큰 쪽에 속하기도 했습니다. 대충 살펴보아도 50명은 되어 보였으니까요. 그 중 절반 이상이 아이들...)

  "안녕하세요. 오늘 강연을 맡은 SF&도서관 관장 전홍식입니다."

  이렇게 인사는 해 두었지만, 조금 막막했죠. 게다가 시스템이 말썽을 부려서 애써 만든 파워포인트 자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그래서 일일이 그림과 동영상을 따로 눌러서 틀어야만 하는 상황)... 여기에 어째선지 동영상에서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형편에 이르면 더욱 문제... 처음에 USB램도, DVD도 제대로 인식하지 않았기에 더욱 더 혼란했습니다
(동영상의 소리가 나오지 않는데도 주최측에선 아무런 설명도 조치도 없다는게 좀 더... 결국, 나중에 노트북의 스피커선을 빼고 노트북의 스피커에 마이크를 들이대는 방법으로 해결하긴 했지만...^^ (네... 강연시의 저는 머리가 좀 더 잘 돌아갑니다. 임시 변통이라면 빠지지 않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약간 엉망이었습니다. 어차피 저야 원고를 준비해 놓고는 보지 않는 스타일이지만, 처음에는 참고를 위해 약간 펼쳐봐야만 했으니까요. [강연의 재미가 50% 떨어졌다!

  그래도 10분 정도 지난 뒤부터는 더 이상 원고를 들추어 볼 필요가 없었지요. 그리하여 본격적인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강연 충실도가 상승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설명도 내용도 좀 더 아이들의 기준에 맞출 수 밖에 없었고, 너무 길지 않게 진행해야 했습니다. 본래 1시간 30분짜리 강연이지만 1시간에 맞추어 끝냈으니까요.

  하지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좀 더 재미있는게 많았지요.

  가장 처음 북두칠성의 사진을 보여주는 순간부터 말입니다.

003_북두칠성.jpg

  "이게 뭔지 아시나요?"

  "북두칠성이요!" (합창으로)

  "네. 그렇습니다. 북녘하늘에 빛을 내는... (이하 생략)"

(중략)


  "옛날 사람들은 별을 보면서 이런 저런 전설을 떠올렸답니다. 그래서 옛날엔 밤 하늘에 괴물도 살고, 여신이나 영웅도 살고, 곰 같은 동물도 살고 있었지요. 하지만, 한 사람이 나오면서 세상은 바뀌었지요."

007_갈릴레오.jpg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한사람... 이 분이 누굴까요?"

(손을 들면서...) "갈릴레이요."


  "네! 맞습니다. 이 사람은 많은 일을 했는데, 그 중에서 망원경을 발명하기도 했죠. 그래서 망원경으로 달을 보는데 (이하 생략)


  이런 식이었던 겁니다. 아이들과의 강연이라는 것은 어떤 점에선 관객과의 일체감을 형성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거든요.

  아이 눈 높이에 맞춘 만큼 강연의 깊이를 다소 낮출 필요가 있었지만, 과학과 SF의 재미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을까요?


  가끔은 이런 일도 있었지요.

  "외계인을 만나면 인사를 해야 겠죠. 그런데 외계인하곤 어떻게 인사할까요?"


  (스타트렉 퍼스트컨택의 동영상을 틀어주고...)

  "바로 이것이 외계인의 인사법입니다. 장수와 번영을 기원하며..."

  "하루는 외계인 역을 맡은 배우가 오바마 대통령을 맡았다는데 오바마 대통령이 저 인사를 해 보였다죠? 오바마 대통령도 알고 있는 외계인인사... 자, 한 번 해봅시다."

  (아이들 손을 들고 인사를 해 본다.)


  네... 자리에 앉은 여러 아이들이 발칸족의 인사를 따라 하는 장면을 떠올릴 수 있습니까?

  물론, 이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스타트렉의 팬이 될리는 없겠지만, SF의 재미라는 건 이렇게 사소한데서 얻기 시작하는 법이지요.


  "하지만 외계인들이라고 모두 좋은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049_우주전쟁.jpg


  "저 손... 외계인의 손이죠. 외계인의 손이 지구를 노리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지구를 떠나야 할지도 모릅니다. 한번 우주로 출발해 봅시다. (이하 생략)"




  우주를 돌아다니는 여러 영상들이 소개되고, 지구가 만들어지고...


  그리고 마지막은 영화 "로켓맨"에서 나온 인터뷰 장면... "I got the whole world"로 끝났습니다.




  다행히도 1시간 강연 동안 중간에 자리를 비운 사람은 거의 없었고, 마지막에는 저도 만족스럽게 끝을 낼 수 있었지요.

  (물론, 끝내고 나면 항상 '아... 여기선 이랬어야 하는 건데...'라는 생각은 빠지지 않습니다만...)


  끝내고 나니 생각됩니다.

  "그래... 아이들을 상대로 SF얘기! 재미있잖아?!"


  이전에 저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과학 강사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가르치고 이야기하는걸 좋아하다보니 참 즐거웠는데, 그런 경험이 도움이 되었던 걸까요?

  여하튼 SF라는 주제도 과학과 뒤섞어서 얼마든지 재미있게 엮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SBS에서 취재를 나왔는데, 취재하신 분들이 "아이들을 인터뷰했는데 '이해가 잘 갔다.'라고 했다."고 말해주시더군요.

  그렇다면 성공인 겁니다. 제 자신으로서는 70점 쯤? (80점 정도 주고 싶지만, 파워포인트 문제로 진행이 매끄럽지 못한게 너무 아쉬울 뿐...) 아직도 많이, 많이 노력할 필요가 있겠지만...


  이렇게 강연을 끝내고 나니 문득 작년의 대전 SF 컨벤션이 생각납니다. 그 행사가 벌어진 곳은 놀이 동산이었죠.

  당연히 아이들과 부모 뿐일 상황... 하지만 당시 저는 그 상황을 생각하지 못했지요.


  그래서, 평소처럼 SF팬들을 위한 준비를 했고 낭패를 보았습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준비한 것 중에서 가장 좋지 않은 결과(물론, 그 과정에서 도서관이 탄생하기도 했지만...)


  하지만, 그것은 결국 우리의 잘못이었죠. 처음부터 대상을 생각하지 않고 진행한 것이니까요. (오덕, 오덕 말은 하지만 결국 오덕이었던 겁니다. 분위기는 생각하지 않고 혼자 노는 셈이었으니...)


  흔히 SF는 어렵다고 합니다. 청소년이나 어른들만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요. 하지만, 사실 SF는 아이때부터 즐겨야 하는게 아닐까요?


  여하튼 저는 즐거웠고, 아이들도 좋아했으니 잘 된 겁니다. 그 아이들이 커서 SF를 좋아할지 어떻지는 모르겠지만, 이 일을 계기로 SF와 과학에 좀 더 관심을 가져준다면 좋을 뿐이지요.


추신) 이 강연 내용은 이번주 목요일 12시20분에 SBS에서 진행하는 목요 컬쳐 클럽에 소개됩니다. 공중파 방송인 만큼 내용의 일부만 소개될 듯 하지만... 녹화는 해 두었는데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군요. 도서관용의 자료로는 놔두겠지만 공개하기는 별로...

  저는 기본적으로 한번 한 강연 내용은 반복하지 않으니 같은 강연을 다시 소개할 일은 없겠지만(간단히 말해 제 강연은 한번 놓치면 두번 다시 볼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이들을 편집해서 다큐멘터리 형식의 강연 내용으로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동영상과 그림을 조합한 강연 방식을 계속 발전시켜나갈 생각이기도 합니다만... 다만 시간과 능력이 문제군요. 혹시 누구든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이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