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글 이벤트로 받은 <노인의 전쟁>입니다. 요새 바쁜 일이 좀 많아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며칠 전에야 읽기 시작했는데, 거의 3일만에 다 읽은 것 같네요. 붙들기 시작하면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간만에 맛 본 흥미진진한 책이었습니다.

 

SF적인 발상은 간단하고도 일반적인 것입니다. 우주에서의 위험한 전쟁을 치르기 위해 유전자 조작으로 강화시킨 아바타를 만들어 싸운다는 것인데요, 작가는 이 기본 아이디어에 자신만의 색을 입히기 위해 한 가지 설정을 더 도입했습니다. 우주 전쟁을 치를 군인들은 오직 75세 이상이 되어야만 지원 가능하다는 것. 이를 통해 생의 가치와 싸움의 치열함을 더 부각시킬 수 있었습니다.

 

 

 

 

(주의! 스포일러 잔뜩! 하지만 책 뒷표지에 이미 나와 있는 수준까지만 써 놨습니다.)

 

 

 

 

존은 75세 생일에 우주 전쟁을 위한 군인이 되기 위해 지구를 나섭니다. 10년 전에 우주 군대에서 함께 새 인생을 시작해 보자고 약속했던 아내도 죽고 없는 지금, 더 이상 지구에서의 삶에 미련도 없지요. 우주 함선에 탑승한 존은 다른 수백 명의 지원자들과 함께 자신의 유전자를 기반으로 각종 강화 처리를 받아 만들어진 이질적이고, 강하고, 무엇보다도 젊은, 새 몸을 얻게 됩니다.

존은 전쟁터로 나갑니다. 싸우고, 죽이고, 태우고, 인류에게 하나의 행성을 더 선사합니다. 그가 아직 노인의 몸으로 우주 정거장에서 만나 친구가 됐던 동료들, 옆에서 같이 싸우던 전우들이 하나 둘 죽음을 맞고, 그들의 75년 인간으로의 삶과 수 년의 우주 군인으로의 삶이 덧없이 총칼에 찢겨질 때도 그는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에게도 죽음의 고비가 찾아왔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헤매던 그의 희뿌연 시야에 익숙한 얼굴이 나타나고, 그를 구출해 냅니다. 그 사람을 부르고 싶지만 그의 턱은 찢겨진 상태고, 그 사람을 붙잡고 싶어도 그의 뼈는 으스러져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헤어졌지만, 유전자 조작을 받은 군인의 몸으로 다시 만난 죽은 아내를 그렇게 놓쳐 버리게 됩니다.

알아요, 죽은 아내가 돌아올 리 없단 걸. 하지만 기억하던 나이 든 모습이 아닌데도, 심지어는 익숙하던 '인간'일 때의 모습이 아닌데도 그는 아내를 한눈에 알아봤고, 사랑하던 아내를 다시 보고 싶습니다.

 

"...그녀가 구급차 안에서 죽었을 때도, 그 손을 잡고 있었지. 난 그녀의 눈에서 빛이 꺼지는 것을 보았지만, 계속 내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했어. 병원에서 사람들이 우리를 떼어 놓을 때까지 계속."

"왜 그랬어?"

"그녀가 듣는 마지막 말이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냐는 소리였으면 했으니까."

 

내 아내의 모습을 한 그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내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다시 아내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총평을 하자면, 작가 본인도 밝혔듯이 하인라인의 <스타쉽 트루퍼스>의 강한 오마쥬가 느껴지는 훌륭한 밀리터리 소설입니다. 주인공의 군인으로서의 자각 과정, 전쟁의 묘사 모두 보통 이상의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수준인 SF적인 독창성이 이러한 표현력으로 충분히 보완된다고 봅니다.

밀리터리 소설로서의 장점도 좋다고 보지만, 제 사견으로는 후반부에 나타나는 인간적 감정에 얽힌 이야기가 좀더 괜찮지 않나 생각합니다.

함께 받은 후속편, <유령 여단>을 어서 읽어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