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언 연대기 용기사 3부작
(앤 맥카프리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2007년)
1권 [드래곤의 비상], 2권 [드래곤의 탐색], 3권 [백색 드래곤]


먼 미래, 은하계로 진출한 인류는 궁수자리 근처 G형 항성 루크뱃의 주위를 도는 아름다운 지구형 행성을 발견하고 퍼언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주민들은 퍼언에 정착하여 몇 세대에 걸쳐 목가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지만, 곧 200년 주기로 접근하는 '붉은 별'로부터 치명적인 정신적/물리적 타격을 입는다.

이 방랑 행성에 살고 있는 은빛의 토착 생명체는 우주공간을 가로질러 훨씬 더 온화하고 살기 좋은 퍼언으로 날아왔다. 인류가 '사포'라고 이름붙인 이 은빛 생명체는 퍼언의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 자신과 접촉하는 모든 생명체를 녹이고 사멸시킨다.

인류는 퍼언의 날짐승을 생물학적으로 개량하여 이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는데, 지구의 전설에 등장하는 드래곤과 비슥한 이 지성체를 똑같이 '드래곤'이라 부르며 기사와 함께 특수 훈련을 받게 했다. 텔레파시적인 교감을 통해 드래곤과 맺어진 용기사들은 퍼언을 지키고 영웅적인 명성을 얻지만, 최초의 위기를 극복한 이들의 역사는 그들의 조상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식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퍼언은 이렇게 사포(絲胞, thread)라 불리는 위협에 대항해, 고립된 무기질의 성채와 용기사들의 용굴 등 독특한 사회적 시스템을 발달시킨 세계입니다. [듄]과 같이 독특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낸 상상력이 탁월하죠. 용기사 3부작은 환타지의 느낌이 강하지만 곳곳에 고대인들의 잃어버린 기술문명이 암시되고 있고, 광대한 시리즈는 '사이언스 판타지' 혹은 '행성 로맨스'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도 막내아들과 계속 집필이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앤 맥카프리라는 여성 작가의 작품이라 그런지,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보이면서도 내내 따듯한 시선을 잃지 않습니다. [얼음과 불의 노래]만큼 매력적인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보다 한결 덜 야만적이고 긍정적인 시각이랄까요.

1 권 드래곤의 비상은 4편의 중편 소설을 엮은 것인데, [용의 간택]은 1967년 휴고상 최우수 중편상, [먼지 내림]과 [차가운 간극]은 1968년 네뷸러 최우수 중편상을 각각 수상한 명작입니다. 1권 전반부는 다소 흐름이 느릿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1권 후반부 [먼지 내림]과 [차가운 간극]의 시공을 넘나드는 모험은 그야말로 아찔합니다 (저는 시간이동물을 좋아해 너무 맘에 들었습니다. "시공을 도약하는 드래곤!"). 2권 드래곤의 탐색도 팽팽한 갈등과 활극으로 채워져있고, 3권 백색 드래곤은 다시 좀 느슨한 분위기입니다.

저는 퍼언 연대기를 먼저 보고 그 다음에 [테메레르] 1권을 접했는데, 개인적으론 퍼언 연대기 쪽이 더 좋았어요. 좀더 SF 다운 향취도 깊고, 특히 드래곤들의 생태와 용기사들의 생활상 등이 인상깊었달까요. 그에 비해 [테메레르]의 용들은 뭔가 수동적이고 전쟁병기에 가까운 인상이었습니다. 2권 이후는 안봐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 예전 블로그에 올린 서평을 옮겨옵니다. 2007년에 나온 책이라 지금은 쉽게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